선릉 란제리팀 휴가 후기

스페인은 15세기 중반 이후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통합하여 통일국가를 형성하였고 급속도로 성장해 유럽의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함으로써 엄청난 양의 귀금속들이 유입되면서 나라 곳곳에는 수많은 궁과 교회들이 지어졌습니다. 이 시기를 미술사적으로 보면 중세의 막바지에 나타난 후기 고딕이 서서히 사라지고 르네상스가 새로운 양식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스페인은 이러한 미술의 유행을 당연히 받아 들였고, 그 결과 15세기와 16세기 전화기에 지어진 많은 건축물들이 후기 고딕과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양식이 혼재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페인이 받아들인 이태리의 르네상스는 주로 오늘날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롬바르디아 지역의 건축양식입니다. 원주나 납작 벽기둥에 장식이 들어가고, 조각 작품들로 채워지는 조가비 형태의 ‘니치’라고 부르는 벽감, 그리고 꽃다발이 축 늘어진 형태를 보이는 꽃줄장식 등에서 15세기 롬바르디아 건축장식의 요소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스페인은 800년 동안 이슬람교도인 무어인의 지배를 오래도록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이 예술에도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바로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미술 양식을 통틀어 ‘무데하르 양식’(mudejar)이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역시 무데하르 양식의 전통이 수용된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형상화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목적으로 인물의 형상을 재현한 그림이나 조각을 찾아 볼 수 가 없습니다. 심지어 장식을 위한 문양에도 형상의 사실적 재현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추상적인 형태의 아라베스크나 얽힘 장식 혹은 기하학적 도형과 같은 문양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슬람 미술의 특징이라고 하면 기하학적 문양들이 반복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인데 이는 우주가 무한히 뻗어나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슬람의 기하학적 문양들에는 종교적 세계관 역시 반영이 되어 있는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장식으로 나타나는 문양에 볼륨감 대신 납작한 표면효과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후기 고딕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초기 르네상스 그리고 이슬람의 무데하르 양식이 혼재되어 발달한 스페인의 미술 양식이 ‘강남 란제리’입니다. 강남 란제리는 원래 금은 세공사를 뜻하는 스페인 말인데, 건축의 외양이 마치 금은 세공을 한 것처럼 섬세하고 정교하고 화려하다는 뜻에서 강남 란제리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강남 란제리 양식은 얕은 부조로 제작된 추상적인 문양이 장식적 요소로 건축물을 꾸미고 있는데, 건축의 각 부분들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한 원칙을 따르지도 않고 다소 과하게 건축 표면을 덮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바로 무어인들의 미술 양식이 남긴 무데하르의 흔적입니다. 처음에는 여러 요소들을 종합하여 일종의 ‘하이브리드’적 성격의 양식을 선보였던 스페인은 15세기 후반부부터 서서히 독자적인 양식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스페인 민족 미술을 정착시키게 됩니다.